[Who기] 헤어질 결심
Who기 코너에서는 영화, 책 등 한 작품을 접한 후 그에 대한 감상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식견이 부족하여 제작자의 의도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채로 작성하는 글이라는 점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예술이라는 것이 본래,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해석이 덧붙여지며 풍성해지는 것이기에, 제 글도 그 풍성함에 작게나마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또한 당연하게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소개
국내 기준, 2022년 6월 29일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작품
박해일, 탕웨이 주연
한 산악인의 죽음을 수사하게 된 형사. 불면증에 시달린 그는 죽은 남자의 미스테리한 아내에게 점점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유력한 용의자이기도 한데.
(넷플릭스 줄거리 소개)
-감상
제목, 예고편만 보고 신선한 로맨스 영화일 것이라 예상하고 시작했다가... 어지간한 스릴러물보다 더 긴장하면서 봤다.
솔직히 장르 소개에서 로맨스는 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한 줄로 표현하자면,
처절하지만, 강렬한 사랑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대신 죽거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죽이는 영화는 많이 있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죽이는 영화가 있었나. (고전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도 비극적인 사랑을 다루나, 사랑 때문에 직접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는다.)
작품에는 사랑한다, 라는 말이 직접 언급되기는 커녕 로맨틱한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강렬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작중 주요 인물들은 사랑으로 인해 삶이 '붕괴'된다.
장해준은 능력 있고 존경받는 경찰로, 자신의 일에 대해 자부심이 많은 사람이였다. 그러나 송서래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직업적인 신념을 꺾는다.
이후 해준은 아내가 있는 이포로 가지만, 점차 말라간다. 자신의 직업적 프라이드를 꺾은 시점에서 그는 1차적으로 무너졌다.
영화의 끝에서 서래마저 잃음으로써 그는 완전히 무너졌을 것이다.
송서래는 살인자이다. 한 번은 본인이 직접, 다른 한 번은 타인을 교사하여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서래가 악인으로 인식되지 않았던 것은, 두 번 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살인을 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본인이 살기 위해서, 두 번째는 해준을 살리기 위해서.
특히 두 번째 살인의 경우, 서래는 살인을 할 이유가 없었다.
사랑하진 않지만 돈이 많은 남자와 결혼을 하여 사람을 죽여가면서까지 안정적인 삶을 되찾았다. 남편이 녹음 파일을 폭로한다고 해도 서래에게는 영향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파일이 공개되면 해준이 다칠 것이기에, 그를 지키기 위해 살인을 했다.
그리고 사건이 종결되었기에 그대로 도망갔어도 됐을텐데, 스스로 목숨을 끝낸다.
해준이 자신을 영원히 기억해 주기를 바라면서.
내가 주목한 또 다른 등장인물은 홍산오.
작중 묘사로 홍산오는 감옥을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복수를 위해 사람을 죽이고 도피 생활을 하다 결국 투신한다.
이렇게 주요 인물들은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그 결과 그들의 삶은 붕괴된다.
작중에서 사랑에 빠진 사람들 중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영화를 처절한 사랑 이야기라고 표현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널 위해 내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다, 라고 이야기 한다.
많은 로맨스 영화는 위 문장을 아름답게 묘사한다.
희생한 연인을 아련하게 그리며 그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모습이라던지, 모든 것을 잃었지만 둘만 남아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모습이라던지.
반면 이 영화는 위 문장을 잔혹하고, 그렇기에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습니까? 정말로? 이래도?
라고 묻는 듯 하다.
영화 등장인물들의 사랑을 내 주위 사람들이 하고 있다면, 그게 무슨 미친 짓이냐며 말릴 것이다.
이렇게 사랑이란 이성적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행위이다.
그럼에도 사랑이 숭고한 것은, 자신의 이익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도록 설계된 인간이, 유일하게 유전자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신보다 상대방을 더욱 우선시 하도록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한다는 말에는 그 숭고함 끝에 비극만이 남아 있더라도, 감수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런 점에서 '헤어질 결심'은 사랑한다는 말에 담긴 지독하게 무거운 무게를 전달하는 영화이다.
처절하지만 강렬한 사랑 이야기.
각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위의 마음을 담아 사랑한다는 말을 건네주자.
상대방이 헤어질 결심을 보고 난 후라면, 폭풍 감동을 받아 울지도 모른다.
끝.